“배관파손 우려없는 SMR… 지진·테러에 안전한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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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규 서울대 원자핵공학 교수
한 용기에 기기들 일체화, 소형화로 지하설치도 가능, 데이터센터·수소생산시설, 한 지역에 패키지 설치하면
비용 줄이고 원전 열도 활용, 재생에너지 부족한점 보완,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과제
‘인공지능(AI) 전쟁’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전력공급. 부족한 전기 생산의 ‘구원투수’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원이 바로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이다. 일찌감치 SMR 기술 개발에 나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의 ‘테라파워’가 6월 미국 내 첫 SMR인 ‘나트륨’ 착공에 들어가고 세계 각국이 71종의 SMR 개발에 나서는 등 2035년 620조 원대로 예상되는 SMR 시장 선점 경쟁은 이미 뜨겁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형 SMR인 ‘i-SMR’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처음으로 SMR 1기가 반영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초로 서울대에 설치된 ‘SMR 가상운전 시뮬레이터’는 학계와 산업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시뮬레이터 실습 프로그램 책임자인 조형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지난 5월 27일 만나 SMR 필요성과 장단점, 국내 개발 현황·과제·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SMR 시뮬레이터에 대해 소개해달라.
“가상의 SMR 운전 연습 공간이다. 비행기 시뮬레이터를 생각하면 된다. 조종사가 시뮬레이터에서 비행 연습하듯, 운전원이 원자로를 운전해보는 곳이다. 실제 원전 제어실과 동일한 환경에서 운전과 비상대응을 훈련할 수 있다. 미국의 SMR 설계 기업인 뉴스케일사가 설계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에 6번째로 도입됐다. 뉴스케일에 지분을 투자한 GS에너지,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의 기증을 통해 서울대에 설치돼 운영 중이다. 인력양성과 생태계 강화를 위한 취지에 맞게 공공재로 생각하고 타 학교 학생들에게도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어떻게 작동하나.
“SMR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뒤 제어실과 연결한 시설이다. 3명의 운전원이 가상의 SMR 12기를 운전해볼 수 있다. 각각 77㎿의 출력을 내고 있는 SMR이 12기 모여 하나의 발전소를 이룬다. 12기를 합하면 총 924㎿의 출력으로 대형원전 1기의 출력과 유사한 수준이다. 각각의 SMR을 제어하는 패널에는 운전원이 꼭 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표시된다. 지진, 정전, 배관파단 사고 등 다양한 상황을 가상으로 발생시켜 비상 대응도 연습해볼 수 있다.”
―대형원전과 견줘 SMR 안전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대형원전은 원자로용기, 가압기, 펌프 등의 주요 기기들이 큰 직경의 관으로 연결돼 있다. 대형 배관이 파손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반면, SMR은 출력이 낮아지면서 소형화된 기기들을 하나의 용기에 집어넣어 일체형으로 만들 수 있다. 대형 배관이 파손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와 같이 모든 전원이 상실되는 경우에도 자연력만으로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 또 소형화로 개별 원자로를 지하에 설치할 수 있다. 지진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테러와 같은 외부 위협에 의한 영향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로 사고 시에도 방사선에 의한 피해가 원전 부지 경계 내에 머물게 된다.”
―지난해 뉴스케일의 ‘아이다호 SMR 프로젝트’가 무산되며 SMR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개발 초기 비쌀 수 있지만 여러 대를 만들기 시작하면 규모의 경제가 형성돼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원전 건설은 철근 콘크리트 시공으로 대표되는 토목산업의 비중이 높다. SMR의 경우 모듈화로 공장에서 주요 기기를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설 기법이 사용될 수 있다. 부지 경계 밖 방사선 위험이 낮아져 바로 옆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산업시설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도 경제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요소다. 산업단지가 인접하게 되면 송전망 비용이 줄고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열도 직접 활용할 수 있다. 전력수요가 큰 데이터센터와 열 공급이 필요한 수소생산시설을 SMR과 한데 묶어도 된다.”
―재생에너지와 경쟁하게 될까.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앞으로 계속 늘어나야 한다. 원전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중요한 무탄소 전원이다. 특히 SMR은 재생에너지와 궁합이 더 좋다. 대형원전은 용량이 크다 보니 과도한 출력 조정이 부담되지만 SMR은 대형원전을 나눠 운영하는 셈이라 대형원전에 비해 출력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 쉽다. 탄력운전·부하추종운전이 수월하다.”
―남은 과제는.
“출력대비 대형원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최근 SMR의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을 저감하기 위한 핵연료기술 개발이 시작됐다. SMR의 높아진 안전성과 농축도를 증가시킨 핵연료가 조합될 경우 사용후핵연료 발생 저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하나의 도전은 대중수용성이다. 좁은 땅과 인구 밀집도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다만, 높아진 안전성, 재생에너지와의 공존, 공정열 활용 등 SMR의 장점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수용성도 서서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지원은.
“현재 원자력안전규제는 대형원전을 중심으로 엄격하게 수립돼 있다. SMR과 관계없는 규제가 있다면 신속하고 엄밀한 평가 후 적용을 면제해 줘야 한다. 비합리적인 규제는 필요 시 법을 바꿔서라도 풀어줘야 한다. 조속한 수출이 가능하도록 민간 참여도 독려해야 한다. 정부 주도하에 SMR을 만들되 기술이 완성되면 민간에 넘기고, 민간이 이를 활용하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벽을 해소해 줘야 한다.”
―SMR이 상용화한 우리나라 모습은 어떨까.
“최근 국내외에서 전력생산과 관련된 급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급변기에 SMR이 상용화된다면 전력 생산 시 경제성과 탄소중립, 안전성을 모두 잡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3배로 확대하자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증가분의 3분의 1은 SMR이 공급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적기에 개발을 완료할 경우 새롭게 열리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SMR을 통해 탄소중립과 기후변화라는 전 세계적 과제에 기여하며 동시에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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